실버 인생

정년 후 동네 악단에 입단한 실버세대, 색소폰 배우기에 도전하다

badaja-sun 2025. 7. 19. 12:45

정년퇴직, 실버 인생, 그리고 다시 시작된 첫 번째 ‘입학식’

나는 37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했다. 민원서류를 다루고, 서류철을 넘기며 매일 같은 동선을 오갔다. 퇴근 후엔 집으로 곧장 돌아왔고, 삶은 규칙적이되 어딘가 무채색 같았다. 그러다 작년, 마침내 정년을 맞이했다. 동료들과 조촐한 송별회를 치르고, 사무실 책상을 정리하며 느낀 감정은 안도보다는 공허함에 가까웠다.

“이제 뭘 해야 하지?”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은 꽤 날카로웠다.
하루아침에 바쁘던 일상이 사라지자, 그 빈자리는 기대보다는 막막함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마을 게시판에서 한 장의 포스터를 발견했다.
‘○○구 주민음악단 단원 모집 - 색소폰 초보자 가능’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젊은 시절, 흑백 TV에서 재즈 뮤지션들이 색소폰을 부는 모습을 보며 한 번쯤 불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 나는 생전 처음 색소폰을 만났다. 악보도 모르는 내가 말이다.

 

색소폰 부는 실버 인생

 

실버가 낸 색소폰의 첫소리는 ‘노래’가 아니라 ‘비명’이었다

 

처음 입단했을 때 나는 60대 중반이었고, 단원 중에선 제일 나이가 많았다. 강사는 40대 초반의 밝은 음악인이었고, 나보다 20년은 어린 초보 단원도 여럿 있었다. 그중 한 명은 고등학생이었고,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다가 "형님"으로 정정해 웃음을 자아냈다.

색소폰을 받아 들고 처음 한주는 ‘소리 내기’가 전부였다.
사람들은 색소폰이 멋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소리 하나 내기도 어렵다.
숨을 불어넣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입 모양과 혀의 위치, 리드를 누르는 압력까지 복잡하게 조율해야 한다.

처음엔 아무리 불어도 공기 빠지는 소리만 났다.
그러다 간신히 음 하나가 나왔는데, 그건 음악이 아니라 짐승의 울음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나는 기분이 좋았다.
비명을 내는 색소폰이 아니라, 정말 오랜만에 ‘무엇인가를 배운 느낌’이 나를 살아있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색소폰 리드를 손질하는 방법, 튜너로 음 맞추는 방법, 스케일 연습 노하우까지 유튜브로 찾아보며 공부했다. 휴대폰 검색창에는 ‘색소폰 입술 모양’, ‘색소폰 비브라토 방법’ 같은 검색어가 가득했고, 노트엔 음계가 빽빽이 적혀 있었다. 배움은 고되고 어렵지만, 그것을 '즐겁다'라고 느낀 건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실버세대인 나의 생활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연습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7시에 있었다.
처음엔 가족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나이에 무슨 악기야?”, “관절 아픈데 숨이나 쉬겠어?”
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 그 두 시간이 내 일상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연습실에 들어가면 나이도 직업도 사라졌다.
모두가 초보였고, 실수를 하면서 웃고, 어느 날은 갑자기 음이 맞아떨어지면 박수가 터졌다.
내가 색소폰으로 '도'를 제대로 낼 수 있게 되었을 때, 단원들이 손뼉을 쳐줬다.
그 박수 소리는 퇴직식 때 받았던 박수보다 훨씬 뿌듯했다.
그건 내 노력의 결과였고, 단순한 ‘생계의 끝’이 아닌 ‘삶의 새 출발’에 대한 인정이었다.

점차 음계를 익히고, 두세 곡의 간단한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악보 읽는 법도, 손가락 운지법도 어색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음악을 통해 다시 누군가와 연결되고 있다는 감각이 참 좋았다.
단원들과 연습 후에 커피를 마시고, 음악이 아닌 인생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어느덧 혼자가 아니었다.

이제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연습 곡을 다시 떠올리게 되고, 가끔은 꿈속에서도 멜로디가 들리는 듯하다. 정해진 출근길 대신 악보가 있는 책상으로 향하는 나의 ‘출근’은, 은퇴 전보다 더 활기차다.

 

마을 축제 첫 무대, 실버인 나의 손은 떨렸지만 마음은 확실히 뛰었다

입단한 지 6개월 후, 주민센터에서 열리는 가을 축제 무대에 우리 악단이 참여하게 되었다.
곡명은 <애모>.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불러왔던 90년대 명곡이었다.
나는 중간 멜로디 파트를 맡았다. 음이 많진 않았지만, 멜로디가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 손이 떨렸다. 연습 땐 실수해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관객이 있었다.
음 하나 삐끗하면 전체 흐름이 어그러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나는 단 한 음도 놓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입술에 힘을 주었고, 색소폰에서 나온 소리는 의외로 또렷하고 단단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 순간 나는 무대의 주인공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에서 박수가 터졌고, 내 아내는 울고 있었다.
딸은 영상으로 찍어 SNS에 올렸다며, ‘아빠 요즘 뭐 하시냐’는 댓글이 폭주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날 나는 단지 악기 하나를 배운 게 아니라, 다시 나 자신을 증명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사람들 앞에서 나를 다시 소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색소폰을 부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퇴직자나 은퇴자가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게 너무나 고마웠다.

 

음악은 나이와 상관없다. 실버세대의 도전은 더더욱 그렇다

누군가는 색소폰이 호흡이 많이 필요한 악기라고 말하며, 노인은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색소폰을 통해 숨을 더 깊게 쉬는 법, 긴장을 조절하는 법,
그리고 목소리 없이도 감정을 전달하는 법을 배웠다.

색소폰은 내가 잃어버렸던 자존감과 열정을 되찾게 해 준 고마운 악기다.
한 음 한 음이 나의 감정을 대신했고, 연습이 쌓이면서 어느새 내 삶에도 리듬이 생겼다.
거울 앞에서 악기를 드는 나의 자세는 여전히 서툴지만, 마음만큼은 단단하다.
한 번도 연주를 배운 적 없던 내가, 악단의 일원이 된 지금
나는 삶이 생각보다 길고,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고 있다.

나와 같은 은퇴자, 60대 이상의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다.
“늦었다는 건 착각이다. 아직 시작할 수 있다.”
배움은 자격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음악은 심장이 뛰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정년 후가 두렵다면, 악기를 한번 잡아보라.
중요한 건 단지 실력이 아니라, ‘지금도 내가 새로워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나는 오늘도 연습실로 간다.
색소폰은 여전히 무겁고, 음 하나하나가 쉽지 않지만
이 악기는 내 인생 2막을 열어준 최고의 선물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
“퇴직 후 나는 더 바빠졌고, 더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