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삶에 대해 우리 부부는 많은 생각을 나누었던 적이 있다. 도시의 편리함은 좋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60대 중반이 되던 해, 우리는 결심했다. 남부지방의 한적한 한 시골마을로 귀촌한 것이다. 처음엔 낯설고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시골의 삶 속에서 진정한 여유와 기쁨을 찾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내 삶을 가장 크게 바꿔놓은 것은 다름 아닌 ‘닭 키우기’와 ‘텃밭 가꾸기’였다. 이 두 가지는 단순한 생계 수단이나 식재료 확보 차원이 아니라, 나에게는 삶의 리듬을 되찾게 해 준 최고의 취미이자 정서적 치유의 도구였다.
이 글에서는 내가 실제로 경험한 닭과 텃밭을 통한 시골생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려주고자 한다. 이 이야기가 시골살이를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닭을 키우며 배운 생명의 소중함과 책임감
닭을 키우겠다는 생각은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귀촌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무렵, 마을 앞집 할머니가 키우는 닭장에서 나는 매일같이 꼬꼬댁 우는 소리를 들으며 “저런 것도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마침 할머니께서 병아리 몇 마리를 나눠주시겠다고 해서, 본격적인 ‘닭 키우기’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병아리 5마리로 시작했다. 작고 노란 병아리들이 내 손 위에서 삐약거리며 움직일 때, 나는 가슴 깊이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생명을 돌본다는 것은 상상보다 훨씬 큰 감동이었다.
하지만 감동만으로는 부족했다. 닭장 만들기부터 사료 선택, 겨울철 보온 문제까지 하나하나 남편과 내가 직접 해결해야 했다. 초보라서 시행착오도 많았다. 어떤 날은 닭이 감기에 걸려 움직이지 않아, 하루 종일 동물약국을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나는 닭과 ‘교감’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닭장 문을 열고, 닭들의 눈을 바라보며 인사를 나누는 그 짧은 순간은 하루의 시작을 의미하는 소중한 의식이 되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순간은 닭이 처음 알을 낳았을 때였다. 손바닥에 담긴 작은 알 하나를 바라보며,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명이 생명을 낳는 그 순간을 함께하는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지금은 닭이 12마리로 늘어났다. 남는 계란은 마을 이웃과 나누며, 작은 경제적 순환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수확은, 우리가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 그리고 매일 아침을 기다리는 이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텃밭은 나의 작은 우주, 씨앗은 희망의 조각
닭 키우기가 ‘생명과 책임’을 느끼게 해 줬다면, 텃밭 가꾸기는 ‘기다림과 기쁨’을 가르쳐 주었다. 시골집 마당 한쪽을 갈아엎어 텃밭을 만든 것은 닭장 만든 지 한 달 뒤였다. 처음에는 상추 몇 포기와 깻잎, 고추 정도만 심었는데, 이 작은 밭이 점점 우리의 하루를 바꾸는 놀이터가 되어갔다.
봄이 오면 직접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싹이 나는 과정을 관찰하는 일은 그 어떤 영화보다 감동적이다. 특히 아무것도 없는 흙에서 작은 잎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정말 자연은 기적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텃밭은 농사 기술이 아니라 정성이 전부다. 햇볕이 얼마나 드는지, 벌레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물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를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배움’이다. 도시에서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컴퓨터를 잘 다뤘던 사람도, 흙 앞에서는 다시 초등학생이 된다.
여름이 되면 오이와 토마토가 줄기마다 열리기 시작한다. 남편과 함께 수확한 오이를 썰어 냉국을 만들어 먹는 순간은, 도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오감의 행복이다.
특히 고추를 따서 말리고, 된장에 박아 저장하는 작업은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보던 풍경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텃밭은 단순히 채소를 얻는 공간을 넘어, 내 삶의 추억과 뿌리를 되살리는 공간이 되었다.
닭과 텃밭이 만들어준 새로운 인간관계
시골생활은 외로울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닭과 텃밭을 매개로, 나는 오히려 도시보다 더 따뜻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처음 닭을 키우기 시작했을 때는 몰랐지만, 마을 주민들은 생각보다 많이 관심을 가져주었다. 어떤 날은 옆집 할아버지가 닭집 설계를 도와주셨고, 텃밭 농사 경험이 풍부한 할머니가 직접 유기농 비료 만드는 법을 알려주시기도 했다.
나 역시 수확한 상추나 계란을 이웃과 나누며,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를 텄다. “닭이 몇 개나 낳았어?”, “올해는 고추가 잘 됐네” 같은 말들이 어느새 정겨운 인사말이 되었다.
이런 정은 도시에서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외로움에 시달렸던 내게, 이웃과의 교류는 무엇보다 정신적인 안정을 주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취미이자 생계가 되는 시골의 소소한 경제
닭과 텃밭은 단순한 취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소소한 수익도 만들어내고 있다. 아침마다 모은 신선한 달걀은 마을 이장님을 통해 작은 로컬 장터에 나가고, 고추와 방울토마토는 여름철 농산물 직거래장터에서 판매도 해봤다.
수익이 크지는 않지만,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팔 수 있다는 생산자로서의 자존감이 커졌다. 또 손수 키운 작물을 이웃에게 건넬 때 들리는 “맛있다”는 한마디는 돈 이상의 만족을 안겨준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소비자’가 아닌 ‘창조자’로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닭과 밭에서 시작된 변화였다.
시골살이의 리듬은 천천히, 그러나 풍요롭게 흐른다
도시에서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갔다. 하루에도 수십 번 핸드폰을 확인하고, 끊임없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삶이었다. 하지만 시골에서의 하루는 느리지만 단단하게 흐른다.
아침이면 닭장을 열고, 텃밭에 물을 주며 하루를 시작한다. 점심에는 그날 수확한 채소로 반찬을 만들고, 오후에는 닭들을 한 번 더 살피며 저녁 준비를 한다.
이 리듬이 몸에 익자, 불면증도 사라졌고 혈압도 안정되었다. 정신적으로도 차분해졌고, 매일의 작은 일상에서 감사함을 느끼는 마음이 생겨났다.
시골살이는 불편한 점도 분명 있다. 인터넷 속도는 느리고, 대중교통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도 이곳에 머무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인간에게 본래의 생명력을 회복시켜 준다.
맺음말 – 닭과 밭이 가르쳐준 ‘진짜 삶’의 의미
닭과 밭은 나에게 취미 그 이상의 의미다. 그것들은 ‘생명’, ‘책임’, ‘기다림’, ‘공유’, 그리고 ‘회복’을 알려주었다. 도시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었던 감정과 삶의 균형이, 바로 이 시골생활 안에 있었다.
누군가는 “시골은 심심하지 않냐”라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말한다. “한 번 닭이 알을 낳는 걸 지켜보면, 그보다 더 큰 감동은 없다”라고. 그리고 “씨앗이 싹을 틔우는 순간, 하루가 달라진다”라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시골살이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단 한 가지를 말하고 싶다.
시작해 보라. 자연은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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