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은 많은 사람에게 ‘종착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출발선’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특히 60대라는 나이는 단순한 여생의 시작이 아닌,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일 수 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35년간 교직에 몸담았던 그는 은퇴 후 ‘도자기’라는 낯선 세계에 발을 들였고, 불과 1년 만에 자신만의 도예 작품을 전시회에 올리는 성과를 이뤘다. 그의 여정은 단순한 취미 생활의 연장이 아닌, 자신을 재발견하는 창조적 도전이었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한 60대가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표현하고, 결국 관객과 소통하는 예술가가 되어갔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실버세대가 첫 도자기 물레 앞에 섰던 날 – 두려움과 호기심의 충돌
그가 도예를 처음 접한 건 퇴직한 지 3개월이 지난 어느 봄날이었다. 우연히 근처 복합문화센터에서 ‘성인 취미 도예 클래스’라는 문구를 보고 가볍게 신청했을 뿐이다. 교직에서 늘 사람을 가르치던 입장에서 ‘배우는 입장’이 된다는 것이 어색했지만, 손으로 흙을 만지고 형태를 잡는 그 느낌은 단번에 그의 감각을 사로잡았다. 처음 물레 앞에 섰을 땐, 생각처럼 쉽게 돌아가지 않는 손놀림에 좌절감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나도 다시 배울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그는 그날을 이렇게 회고했다. “내 손끝에서 무언가 만들어지는 감각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어요.” 흙을 만지는 단순한 행위가 어느새 그의 일상 속에 들어와 있었다.
주말이 기다려지는 실버 인생으로 바뀌다
그는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도예 학원을 찾았다. 평일에는 인터넷으로 도자기 제작 과정을 공부했고, 유튜브에서 일본 장인의 시연 작업을 보며 스스로 기술을 습득했다. 단순히 손재주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흙의 수분 비율, 온도, 가마 굽기 시간 등 과학적 지식도 함께 요구되었다. 그는 이를 ‘오랜만에 머리를 쓰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 하나하나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처음엔 찻잔, 그다음은 밥그릇, 그 후엔 작은 꽃병까지 영역을 넓혀갔다. “도자기는 흙으로 만든 일기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품 하나마다 그날의 감정과 생각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도예를 시작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주말이 기다려지는 삶’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실버세대, 실력을 키우는 대신, 감각을 길렀다
처음 몇 달은 ‘모양이 예쁘지 않다’, ‘유약이 고르지 않다’며 실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나는 예술가가 아니고, 내 감정과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 하나 만들면 충분하다.” 이 관점 전환이 그의 작품 세계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이후부터는 ‘실수조차 개성’이라며 실패한 도자기를 버리지 않고 전시용 오브제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형태가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기능적 완성도보다는 감성적 울림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이 서서히 구축되기 시작했다. 점점 작품은 단순한 생활도구를 넘어서서 ‘이야기 있는 물건’으로 변해갔다.
실버세대의 전시회, 상상도 못 했던 무대에 서다
도예를 시작한 지 10개월이 되던 때, 지역 문화센터에서 ‘신진 생활예술 작가 전시회’를 연다는 공고가 붙었다. 주변에서 “선생님도 내보내 봐요”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처음에 망설였다. “내가 감히 전시회를?” 그러나 용기를 내 출품 신청을 했고, 그의 ‘자연을 담은 시리즈’ 6점이 선정되었다. 전시회를 준비하며 그는 처음으로 ‘작가 노트’를 작성했고, 관람객들이 볼 수 있도록 각 작품에 제목을 붙이고 설명을 달았다. 그중 하나인 <바람이 머물던 찻잔>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관람객들은 단순한 찻잔이 아닌, 흙과 바람과 손끝의 대화로 만든 하나의 ‘작품’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이때 그는 처음으로 ‘내가 만든 것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실버세대는 아직 만들고 싶은 것이 많다’ – 끝이 아닌 시작
전시회 이후 그는 더 적극적인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마당 한편에 작은 작업공간을 꾸몄고, 이제는 수강생이 아니라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그가 직접 기획한 ‘50+ 도예 모임’은 또 다른 퇴직자들의 인생 제2막을 여는 통로가 되었다. 작품 판매보다는 ‘같이 흙 만지는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생각했고, 현재는 소규모 공방 창업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그는 말한다. “60대가 돼서야 비로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성공이에요.” 퇴직 후의 삶이 단조롭고 무력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그는 손끝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법을 배웠다. 그의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마치며 – 실버세대, 인생의 손맛을 찾다
퇴직 후 도예라는 전혀 다른 세계에 뛰어들어 단 1년 만에 전시회를 열기까지, 그의 여정은 단순히 ‘늦게 시작한 도전’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 가능한 인생의 시점이 언제든 존재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흔히 젊을 때 도전하고, 나이가 들면 안정적으로 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그 공식을 깨고, 퇴직이라는 기회를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으로 바꾸었다. 지금도 그의 손은 흙을 빚고 있고, 마음은 여전히 설레는 새벽을 맞이하고 있다. 60대가 되어 도예가가 된 한 사람의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진짜 나의 인생을 만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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