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에 마음을 담고, 붓끝에 인생을 새기다”
손글씨로 마음을 다시 쓰는 실버세대의 시간
실버세대에게 감정 표현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젊은 시절엔 늘 참고 견뎌야 했고, 가족을 위해 자신의 감정보다는 의무와 책임을 우선해야 했다. 그렇게 억눌러온 감정은 시간이 흐르며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표현’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어졌다. 하지만 어느 날, 나에게 새로운 감정의 출구가 열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캘리그래피였다.
처음엔 그저 예쁜 글씨를 써보고 싶어서 시작했을 뿐이었다. 붓펜 하나 들고, 종이 위에 천천히 글씨를 써 내려가는 일. 하지만 캘리그래피는 단지 글씨를 예쁘게 쓰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건 내면의 감정을 밖으로 꺼내는 창구였고, 내가 살아온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해주는 거울이었다.
이 글은 내가 캘리그래피를 배우며 느꼈던 변화, 그리고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어떻게 감정을 회복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담은 진솔한 기록이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시작한 실버세대 손글씨
나는 캘리그래피라는 단어 자체가 처음엔 생소했다. 그저 젊은 사람들이 하는 예술이라 생각했고, 나와는 거리가 먼 취미라고 여겼다. 그러다 우연히 동네 주민센터에서 ‘시니어 캘리그래피 입문반’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고, 호기심에 신청했다.
첫 수업에서 강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캘리그래피는 글씨를 잘 쓰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마음을 꺼내는 연습입니다.”
그 한 마디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평생 ‘잘해야 한다’, ‘틀리면 안 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왔기에, 이 취미 역시 처음엔 결과 중심으로 접근하려 했다. 하지만 캘리그래피는 완벽을 요구하지 않았다. 글씨가 삐뚤어져도 괜찮았고, 모양이 정돈되지 않아도 개성이라고 했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펜을 손에 쥐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첫 작품은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짧은 문구였다. 글씨는 서툴렀지만, 그 문장을 적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스스로를 위로한 기억은 아마도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실버세대의 캘리그래피가 만들어준 ‘감정의 언어’
나이가 들수록 마음속 감정은 점점 구체적인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워진다. 슬픔, 외로움, 감사, 그리움… 이 감정들은 머릿속을 맴돌 뿐 말로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캘리그래피를 하며 나는 글자 하나하나에 감정을 담는 법을 배웠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감정을 주제로 문장 쓰기’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나는 “보고 싶다, 그립다, 그러나 괜찮다”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한 자 한 자 써가며, 마음속에 쌓여 있던 감정이 서서히 정리되었다.
캘리그래피의 가장 큰 특징은 글씨의 굵기, 간격, 리듬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힘주어 쓰는 글씨는 분노와 의지를 담고, 부드럽고 느린 필체는 위로와 따뜻함을 전한다. 말로는 하지 못했던 감정을 글씨의 선으로 표현하는 동안, 나는 마치 상담을 받는 것 같은 정화를 경험했다.
또한 나는 일기 대신 캘리그래피 노트를 만들었다. 그날의 기분이나 생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거기에 색을 입히고 선을 더했다. 그렇게 감정의 흔적이 쌓여 갈수록, 내 마음도 함께 가벼워졌다.
같은 세대와의 연결, 그리고 실버세대 공감의 힘
캘리그래피 수업에 함께 참여한 분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한 연령대였다. 60대 후반부터 70대 중반까지 다양한 인생을 살아온 분들이었다. 처음엔 다들 조용했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말을 아꼈다. 하지만 수업이 반복되며 하나둘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글씨에 담긴 사연을 나누기 시작했다.
한 분은 “잘 지내니?”라는 문장을 써오셨는데, 그 이유를 묻자 돌아가신 남편에게 매일 속으로 하는 말이라고 했다. 또 다른 분은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라는 글귀를 써오셨고, 오랜 지병 끝에 회복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손을 꼭 잡기도 했다. 캘리그래피는 단순한 글씨가 아니라, 인생의 조각들을 꺼내어 나누는 언어가 되었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점은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외로움도, 후회도, 아픔도, 그리움도 모두가 안고 있는 감정이었다. 캘리그래피는 그 감정을 비교하거나 숨기지 않게 해 주었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 주었다.
실버세대 손끝으로 다시 살아나는 자신감
실버세대에게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 자체가 큰 용기다. 기술에 대한 두려움, 집중력 저하, 손의 떨림 등은 늘 자신감을 앗아간다. 나 역시 처음엔 선이 흔들리고, 글씨 모양이 일정하지 않아 창피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캘리그래피는 연습하면 분명히 늘었다. 조금씩 글씨의 균형이 잡히고, 원하는 느낌을 표현할 수 있게 되자 ‘내가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더불어 완성한 작품을 집 안에 걸어두고, 손주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손주는 “할머니가 이런 것도 해요?”라며 신기해했고, 나는 그 순간 내 존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캘리그라피는 ‘나만의 결과물’을 남긴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매번 끝나지 않는 집안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 손으로 만든 작은 작품 하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흔적이 되었다.
결론 – 실버세대, 감정을 말할 수 없을 때, 글씨가 대신해 준다
캘리그래피는 단순히 예쁜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말로 하지 못했던 감정을 꺼내고, 억눌러왔던 마음을 다독이는 치유의 도구다. 실버세대가 캘리그래피를 배우면서 얻는 것은 단지 기술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고 사람과 연결되는 방법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는 예체능 쪽으로는 소질이 없어”라며 주저하고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소질보다 중요한 것은 용기이고, 잘하려는 마음보다 필요한 건 솔직함이다.
한 문장이라도 좋다. “오늘도 괜찮아”, “참 잘 살았어”, “사랑한다”… 그 어떤 말이든 당신의 마음이 담겼다면 이미 훌륭한 작품이다.
내가 그랬듯, 당신도 붓끝에 마음을 담는 순간 삶이 조금 더 따뜻해질 것이다. 캘리그래피는 우리 실버세대가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멋진 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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