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인생

독서 모임에 참여한 실버세대, 삶이 달라진 이유

badaja-sun 2025. 7. 23. 12:15

“책 한 권이 바꾼 인생, 사람과 연결된 시간의 가치”

 

고요한 실버 일상에 작은 파동을 일으킨 책 한 권의 힘

많은 이들이 은퇴 이후의 삶을 “고요한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바쁜 직장 생활이 끝난 뒤 찾아오는 정적은 처음엔 편안함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고요함은 ‘단절’이라는 이름의 외로움으로 변하곤 한다. 특히 실버세대에게는 사회적 관계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요한 일상을 다시 따뜻한 온기로 채우게 해 준 것이 있었다. 바로 ‘독서 모임’이다.

나는 60대 후반, 서울의 작은 도서관에서 열린 지역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무료한 시간을 채우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완전히 달라졌다. 이 글은 내가 직접 겪은 실버세대 독서 모임 체험기이자, 그로 인해 삶이 바뀐 이유를 풀어낸 솔직한 기록이다.

 

실버 독서 모임

 

실버세대의 독서 모임은 ‘혼자의 삶’을 ‘함께의 이야기’로 바꿨다

실버세대의 하루는 놀랍도록 단조롭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읽고, 점심을 간단히 먹은 뒤 TV를 보다 잠시 졸고, 저녁이 되면 고요한 침묵이 다시 거실을 채운다. 이런 삶 속에서 독서 모임은 마치 작은 불씨처럼 등장했다.

처음 참여했을 땐 낯선 이들과 책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어색했다. 하지만 매주 목요일 저녁,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내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책은 단지 종이에 인쇄된 글자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삶이자 철학이었고,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을 꺼내 놓게 되었다. “이 문장을 읽고 옛날 우리 아버지가 떠올랐어요”, “저는 이 대목에서 눈물이 났어요”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단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인생을 이해하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삶의 외로움이 줄어들었고,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책은 매개체였고, 결국 우리를 연결한 건 ‘이야기 나눔’ 그 자체였다.

 

지식이 아닌 ‘공감’이 오가는 실버세대 공간의 발견

많은 사람들은 독서 모임이 단지 ‘책에 대한 토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버세대가 참여하는 독서 모임은 단순한 지식 나눔을 넘어서는 깊이가 있다.

우리가 읽은 책들은 대부분 에세이, 회고록, 인생 이야기였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같은 책들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이야기 나눔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한 번은 모임에서 ‘어떤 순간에 삶이 가장 힘들었나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그 질문 하나에 모두가 긴 침묵을 지켰고, 첫 번째로 말을 꺼낸 분은 40년 전 가족을 떠나보낸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 순간 방 안의 분위기는 달라졌고, 우리는 책 속 문장이 아닌 서로의 감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독서 모임이 단지 책을 읽는 자리가 아니라, 진심을 나누는 소통의 공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말 해도 될까?”라는 걱정 없이 내 생각을 말하게 되었고, 누군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들어줄 때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실버세대의 반복되던 일상 속에 ‘기대감’이라는 감정이 생겼다

독서 모임이 생기기 전까지는 요일의 개념이 흐릿했다. 월요일인지 수요일인지도 중요하지 않았고, 달력은 단지 약속 날짜를 체크하는 용도일 뿐이었다. 그러나 매주 정해진 요일에 독서 모임에 참석하면서부터는 일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시간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지며, 모임 당일에는 조금 더 단정한 옷을 입고 나가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 자체가 큰 의미였다.

독서 모임은 나의 시간에 규칙성과 목적을 부여해 주었다. 한 주 동안 책을 읽고 밑줄을 그으며 느낀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이 생기고,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더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다음 주에는 어떤 책을 읽을까?”,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라는 사소한 기대감이 내 삶을 조금 더 설레게 만들었고, 이는 우울감과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관계의 회복, 그리고 실버인 나 자신과의 화해

은퇴 후 가장 많이 사라지는 것은 사람이다. 친구들과의 교류는 줄어들고, 자녀들과의 대화도 최소한으로 줄어들며,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끼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감정을 몇 년간 안고 살아왔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독서 모임에서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경험한 순간, 나는 다시 ‘존재감’이라는 것을 되찾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의견에 공감하고,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해 함께 생각해 주는 모습은 내 안의 자존감을 조금씩 되살려 주었다.

더 놀라운 건 나 자신과의 화해였다. 책 속 등장인물의 실수와 후회를 보며, 나의 지난 실수도 조금씩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늦었다’고 느끼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의미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어떤 치유 프로그램보다도 이 독서 모임이 나에게는 훨씬 실질적인 심리적 회복의 장이었다.

 

실버세대, 나이가 들수록 더욱 필요한 ‘사람과 이야기’

책 한 권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사람 한 명의 삶을 바꿀 수는 있다. 특히 실버세대에게 있어 독서 모임은 단지 취미 활동 그 이상이다. 그것은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특별한 통로였다.

독서 모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아도, 말솜씨가 없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나누고 싶은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나 역시 처음엔 망설였지만, 그 첫발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삶은 혼자 살아가기엔 너무 복잡하고, 함께 살아가기엔 너무 아름답다. 독서 모임은 그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외로움 속에서 작은 연결고리를 찾고 있다면, 가까운 도서관, 복지관, 또는 온라인 독서 모임을 찾아보자. 늦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인생의 새로운 장을 펼칠 수 있는 최고의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