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피조물의 찬가」: 「피조물의 찬가」 800주년을 맞이하며 되새기는 생명과 연대의 영성

badaja-sun 2025. 7. 1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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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지은 피조물의 찬가(Cantico delle Creature) 」 800주년을 기념하여, 그 의미와 현대적 시사점을 담아 작성한 글이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피조물의 찬가:

피조물의 찬가800주년을 맞이하며 되새기는 생명과 연대의 영성

 

2025년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지은 피조물의 찬가(Cantico delle Creature)의 탄생 8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노래는 중세 시대,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 토속어인 움브리아 방언으로 지어졌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종교적 기도문이자 시문학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노래가 담고 있는 생명 존중, 겸손, 연대, 그리고 자연에 대한 사랑의 메시지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 프란치스코에게 있어 이 피조물의 노래는 피조물을 통한 하느님 찬가라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 작품을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를 자연을 통한 찬양으로 표현했으며, 인류와 만물의 조화로운 관계를 노래하였다. 이러한 그의 영성은 오늘날 환경 위기와 생태적 전환을 고민하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성 프란치스코의 아씨시 전경

 

태양의 노래 (피조물의 찬가)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하시고 좋으신 주님,
찬미와 영광과 영예와 모든 찬양이 당신의 것이옵고,
홀로 지극히 높으신 당신께만 이것들이 속함이 마땅하오니,
사람은 누구도 당신 이름을 부르기조차 부당하나이다.

내 주님, 당신의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찬미받으시옵고
그중에서도 특별히 태양 형님과 더불어 찬미를 받으사이다.

태양은 낮이옵고, 그로써 당신께서 저희를 비추시나이다,

아름답고 장엄한 광채에 빛나는 태양은,
지극히 높으신 이여, 당신의 모습을 지니나이다.

내 주님, 달 자매와 별들을 통하여 찬미받으시옵소서..
빛 맑고 보석같이 어여쁜 저들을 하늘에 마련하셨음이니이다.

 

내 주님, 바람 형제를 통하여 그리고 공기와 흐린 날씨와 개인 날씨, 그리고
모든 날씨를 통하여 찬미받으시옵소서.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저들로써 기르심이니이다.


내 주님, 쓰임새 많고 겸손하고 보배롭고 순결한 물 자매를 통하여 찬미를 받으시옵소서.

내 주님, 불 형제를 통하여 찬미받으시옵소서.
그를 통해 당신은 밤을 밝혀 주시나이다.

내 주님, 우리 어머니인 땅 자매를 통하여 찬미받으시옵소서..
그는 우리를 기르고 다스리며 울긋불긋 꽃들과
풀들과 더불어 온갖 과일을 낳아 주시나이다.

내 주님, 당신 사랑 까닭에 남을 용서하며,
병약함과 시련을 견디어 내는 이들을 통하여 찬미받으시옵소서..
평화 안에서 이를 견디어 내는 이들은 복되오니
지극히 높으신 이여, 당신께 면류관을 받으리로 소이다..

내 주님, 우리 육신의 죽음 자매를 통하여 찬미받으시옵소서..

살아있는 어느 사람도 이를 벗어날 수 없나이다.
불행하옵니다. 대죄 중에 죽게 될 이들,
복되옵니다, 당신의 지극히 거룩한 뜻 중에 머물게 될 이들,
두 번째 죽음이 저들을 해치지 못하리로소이다..


내 주님, 찬미와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한껏 겸손을 다하여 그분을 섬길지어다.

 

 

피조물의 찬가는 단순한 시가 아니라, 깊은 신학적 명상과 영적 체험의 산물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자연을 단지 인간이 이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형제자매로 인식하였다. 예를 들어 태양을 형제 해’, 달과 별을 자매 달과 별’, 불과 물, 바람까지 모두 형제자매로 부르며,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와 사랑을 발견한다. 이러한 언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자연은 하느님의 손길이 머문 거룩한 존재이며, 그 안에서 인간은 절대적인 주인이 아니라 창조 질서의 일부로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 중심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중세 시대에도 파격적이었다. 현시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겠지만 당시에도 자연을 인간의 필요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성 프란치스코는 그 흐름을 거슬러 비인간 존재들과의 영적 연대를 강조했다. 그가 병약한 몸을 이끌고 마지막까지 자연을 찬양한 것은 단지 시적인 감상이 아니라, 창조주 하느님과의 친밀한 일치에서 비롯된 깊은 기도였다. 특히 생애 말년의 병고와 시력 상실 속에서도 우리의 자매, 죽음까지도 찬양한 대목은 삶과 죽음을 초월한 평화와 감사의 영성을 잘 보여준다.

 

 이 노래는 모든 피조물을 통해 하느님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함을 명확히 드러낸 선언문이기도 하다. 현대에 와서 이 정신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교황은 이 회칙에서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직접 인용하며, 생태 위기의 근본 원인이 인간의 무절제한 소비와 탐욕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인류가 창조 질서를 회복하고 공동의 집인 지구를 돌보아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피조물의 찬가는 단지 종교적 전통을 넘어 오늘날의 생태 신학, 환경 윤리,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고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찬가는 현대 사회의 분열과 갈등 속에서 형제애의 가치를 다시금 깊이 성찰하게 만든다. 자연만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 구성원들도 성 프란치스코의 관점에서는 ‘형제’ 요 ‘자매.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고 돕고 사랑해야 하며,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것은 단순한 윤리적 책임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영적 행위이다. 이 같은 보편적 형제애는 21세기 다문화, 다종교 시대에 갈등을 넘어서는 강력한 메시지를 제공한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기후난민, 환경 파괴의 문제들은 모두 이 연대의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에 발생한 측면이 크다. 그런 점에서 800년 전의 이 찬가는 지금 우리에게 놀라울 정도로 시의적절한 깨달음을 준다.

 

성 프란치스코는 말과 이론이 아닌 자신의 삶으로 이 찬가를 썼다. 그가 살아간 방식은 철저한 가난과 자발적인 단순함, 그리고 피조물과의 깊은 일치를 바탕으로 한다. 그는 새들과 이야기하고, 늑대와 평화를 맺으며, 자연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했다. 그의 생애는 단순히 성인의 일화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 안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 자원 고갈 등 수많은 위기 속에 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성 프란치스코의 노래가 다시 울려 퍼지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피조물의 찬가」 8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그 메시지를 단지 기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연을 존중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겸손하고 연대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이 찬가를 오늘에 되살리는 진정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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